흥미로우면서 과학적인 고대 이집트의 성문화

고대 이집트 신화에 따르면, 태양신 라가 자위를 통해 최초의 인류를 만든 것으로 되어 있다.

따라서 고대 이집트에서 자위는 굉장히 신성한 행동이었다.


풍요를 빌기 위해 매년 파라오 들은 나일강에 배타고 나가서 자위행위를 해야했다.

그 밖에 신화에서도 호루스와 세트가 서로의 정액으로 배틀을 벌이는 등 순화하지 않으면 아이들에게 읽힐 수 없는 내용들이 많이 존재한다.

이 부분은 잘 알려져 있지 않은 사실인데, 대영제국 박물관에 있는 이시스가 오시리스의 성기를 입으로 애무하는 그림이 있다.

이건 아서스처럼 뒤통수를 쳐서 왕위를 계승 중이던 세트가 오시리스를 토막낼 때, 나일 강의 악어가 성기를 먹고 도망쳤기 때문에 시체를 하나 하나 모으던 이시스가 결국 포기하고 진흙으로 가짜 성기를 만들어 달았는데,

이 상태로는 부활 시 완전체가 될 수 없기 때문에 성기에 여신의 정기를 불어넣기 위해 인류 역사 기록 상 제일 오래된 애무로 생명력을 불어넣어 진짜 성기로 만들어 준 것이다.

덕분에 오시리스는 저승에서도 왕을 해먹을 수 있었다.

그래서 그 당시 이집트의 고위층 여성들과 무희들은 필수적으로 입을 이용한 애무를 익혀야 했다.

특히 이 애무로 유명한 인물이 바로 그 유명한 클레오파트라.

과장 없이 텍스트대로만 쓰자면 클레오파트라는 거의 창녀와 다를 것 없는 행동으로 영향력을 확보해 나갔는데, 펠라치오로 100명의 근위대를 보내버렸다는 전설은 유명한 무용담이다.

로마의 영웅 카이사르와 그 후 안토니우스까지 함락시킨 클레오파트라는 이 강력한 스킬(?) 외에도 자신을 연출하는 데 많은 노력을 기울였다.

자기 몸을 통채로 양탄자로 둘둘 말았다가 데굴데굴 굴러서 똭~~! 하고 나타났다는 일화 등은 굳이 설명이 필요없을 정도.

그렇다면 과연 고대 이집트에서 매춘은 없었던 걸까?

현대의 기준에 따른 관리 하의 성매매나 개인 영업은 거의 없었다고 보는게 맞다.

당시 파라오는 물론이고 귀족들은 각자 전국에서 외모가 준수한 여성들을 모아 전속 무희(舞姬), 즉 댄서들을 소유하고 있었는데, 이들의 역할은 당연히 연회 시의 접대였다.

이 댄서 유닛을 뽑기 위해서는 몇 가지 테크트리가 필요했는데 우선 그 부분을 간단히 알아보자.

우선 아마(亞麻) 뿐이기는 하지만 하늘하늘 하게 비칠만큼 얇게 짜내는 방직 기술이 필요했다.

아직 비단이 전래되기 전의 이야기고 그 질긴 마포를 얇게 직조해내는 건 상당히 어려운 기술이어서 당시 살이 살짝 비칠만큼의 천은 상당히 고가였다.

다음으로 화장 기술의 발달인데, 빗, 가발 등은 물론이고, 인류 최초로 입술 연지와 눈화장, 매니큐어를 발명해냈다.

지금도 사용되고는 있지만, 해나 꽃에서 추출한 헨나의 즙을 피부 등에 바르면 갈색에 가까운 붉은 색이 만들어진다.

이걸 이용해서 입술이나 손톱에 발랐는데, 한 가지 주의할 점은 붉은 색은 당시 태양과 피를 상징하는 색이라 오로지 왕족만이 사용할 수 있어서 그 밖의 댄서들은 일부러 색을 다운 그레이드해서 사용해야 했다.

여기에 아이 라인과 아이 섀도우까지 그려주면 화장 완성.

눈화장용 라이너나 섀도우 등은 납을 기반으로 만들어 졌는데 이는 단순히 미용을 위해서 가 아니라 벌레를 쫓는 용도를 가지고 있었다.

마지막으로 감히 높으신 분들에게 접대를 하는데 돼지 창자로 만든 콘돔 같은 걸 쓰게 할 수 없으니 당연히 피임도구를 이용하지 않은 관계가 기본인데, 그렇다고 계속 임신할 수는 없는 노릇이니 피임기술이 필요했고,

대부분은 아카시아 나무의 수액을 자궁 입구에 발라서 지금의 루프 비슷하게 정액이 자궁에 침투하는 걸 막았다.

클레오파트라는 올리브 기름과 납, 꿀을 섞어 자궁 입구를 막아서 피임을 했고, 돈 없는 댄서들은 나일 강가에서 쉽게 구할 수 있는 마른 하마 똥을 기름에 섞어 막기도 했다.

이렇게 준비된 댄서들은 접대자들을 기쁘게 해주기 위해서 음악과 춤을 선보여야 했고, 당연히 침실에서의 봉사도 포함되어 있었다.

특히 전쟁에서의 공훈 등으로 파라오의 댄서를 하사받는 영광을 입게 되면 묘비에까지 새길만큼 큰 명예였다.

뭐 귀족들이야 무희들과 즐기면서 살았다지만, 평민이나 노예들은 결혼이외에 관계를 갖는 매춘이 없었을까?

노동 현장의 가혹함을 달래기 위해 가끔 늦은 등급의 무희들이 살 슬쩍슬쩍 비치면서 요즘 걸그룹들 마냥 위문 공연이라도 하면 파피루스에 잉크 좀 묻혀본 애들 불러다가

“야! 너 야설이나 망가 좀 그려봐라” 하고 일종의 고대 이집트 판 맥심을 찍어내기도 했다.

“내가 누비아 무희랑 눈맞아서 XX한 SSUL만화.MANHWA”

이런 걸 보면서 고된 노동으로 점철된 나날들을 달래곤 했다.

첫 시작부터 언급한 대로 자위행위는 무려 왕족이나 할 수 있는 신성한 행위였다.

그 “신성한 행위” 를 감히 평민이나 노예가 하다가 걸리면?

말그대로 죽을 때까지 맞아야만 했다.

그래서 일부는 지나가는 새끼 하마 등을 데려다가 수간을 하기도 했고, 그나마 암암리에 인기 있는 것은 바로 시간(屍姦) 이었다.

원래 고대 이집트 인의 사상이 영혼이 육체를 떠나도 지상에 돌아와 부활할 때 기억을 온전히 유지할 수 있도록 시체를 잘 저장하는 걸 중요하게 여겼기 때문에 왕족이나 귀족을 제외하면

거의 반드시 장의사의 손을 거치게 되는데 이 장의사들이 지금으로 치면 굉장히 나쁜 사람들이었다.

가끔 수려한 외모의 여자 시체가 들어오면 으슥한 밤에 장의사 집이 문전 성시를 이루곤 했다.

구더기가 꼬이기 직전까지 적당히 주요 장기를 처리하고 올리브 기름 등을 바르고는…

말하고 싶지 않다.

낮은 등급의 무희들을 돈주고 사는 경우도 없지는 않았지만 이는 어디까지나 유산 계급의 경우고 노예들은 포상으로 결혼 이외에 뭐 동물이나 시체 말고는 방법이 없었다고 보는것이 맞다.

밤문화에 있어서도 고대 이집트 시대는 여러가지 의미로 스펙타클 한 시대였다.

현재의 의미로서의 성매매가 거의 없다는 건 의외일지도 모르겠지만, 이는 아예 전쟁 전리품 등으로 여자를 통채로 주고 받았기 때문이고, 고대 이집트가 남긴 화장 기술이나 피임 기술 등은 중세에 이르러

오히려 퇴화하고 만다.

 

 

출처 – 온라인 커뮤니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