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선 임금들이 경복궁을 좋아하지 않은 이유

조선 시대에 궁궐은 임금이 사는 집이면서, 정치행위를 펼친 곳이라고 할 수 있다.

경복궁, 창덕궁, 창경궁, 경희궁, 경운궁(덕수궁)을 5대궁이라고 부르는데,

임금께서는 천년만년 사시고, 큰 복을 누리셔 만수무강 하옵소서 – (군자만년 개이경복)

<시경>의 구절 중, 경복 두 글자를 따서 이름을 지은 경복궁은 궁에 거처하는 왕이 큰 복을 누리길 바라며 지은 이름이지만, 정작 조선의 왕들은 이곳을 별로 좋아하지 않았다.

 

조선의 왕들이 경복궁을 그리 좋아하지 않았던 이유는 무엇일까?

경복궁은 조선의 개국공신 정도전이 태조 이성계의 명으로 설계한 궁인데, 여기서 정도전은 자신의 이상을 담아 궁궐을 설계한다.

정도전의 이상은 당시로서는 정말 특별한 생각을 가지고 있었는데..

 

“나라도, 임금도 백성을 위해 존재할 때만 가치가 있다.” – 정도전 <삼봉집> 中 –

정도전은 민본주의. 즉, 나라의 근본은 백성이라고 생각했던 것.

정도전은 임금보다 백성을 소중히 여기던 마음으로 왕의 공간인 궁궐도 백성을 위하는 마음으로 설계를 한다.

 

나라의 왕으로서 왕은 백성을 위해 끊임없이 일해야 했기에 업무 공간을 강조해서 경복궁을 만든다.

때문에 경복궁은 왕과 신하들이 일하는 공간인 외전이 왕실 가족의 거주 공간인 내전보다 클 정도이다.

 

또 왕이 지켜야 할 의무를 전각의 이름으로 붙였는데,

정책을 구상하는 공간인 사정전에는 깊이 생각하며, 정치하라는 뜻이 담겨 있다.

 

정책을 실현하고 행정을 집행하는 공간인 근정전에는 부지런히 정치하라는 뜻이 담겨 있으며,

왕의 침실인 강녕전에는 몸과 마음을 건강히하고, 편하게 하라는 뜻이 담겨 있다.

 

게다가 강녕전은 우물 정자(井)모양으로, 그 가운데를 왕이 사용하고 주변에 있는 작은 방들에 상궁과 나인이 24시간 대기하고 있었기에 왕의 휴식공간이나 다름 없는 강녕전에서도 백성을 위해 열심히 일해야 한다는 무언의 압박이…

 

경복궁에서는 왕 개인이 사생활(!)이란 존재하기 어려웠던 구조..

그래서 조선의 왕 대부분은 무게감을 느끼게 했던 경복궁보다는 편안하고 아름다움을 선사해주는 창덕궁을 선호한다.

하지만 이런 무게감을 줬던 경복궁을 누구보다 사랑했던 왕이 있었으니.. 그는 조선의 4대 임금 세종대왕.

 

재위 32년 중, 대부분의 기간을 경복궁에서 지낸 세종은 머무는 동안 경복궁을 새롭게 단장하기도 한다.

세종은 경복궁 전각 대부분을 수리하고, 새로 건물을 짓고, 이름이 없던 공간에는 이름도 지어줬는데,

그 이름이 바로 광화문

 

1395년(태조 4년) 9월 경복궁이 건설될 때 처음 지어졌는데, 원래는 그냥 정문이라고 했다가 1425년(세종 7년) 광화문으로 개칭된다.

그리고 경복궁의 의미와 닮은 인생을 살았는데.

근정 – 부지런히 정치하라

오전 5시 기상
오전 6시 아침 공부
오전 7시 아침 식사
오전 9시 업무 보고 및 오전 회의
오전 11시 30 분 점심식사
오후 1시 낮 공부
오후 3시 상소문 검토 및 잡무 처리
오후 6시 저녁 공부
오후 7시 저녁 식사
오후 8시 야간 공부
오후 10시 취침
사정 – 생각하고 정치하라

일생동안 1,835회 이상의 강연(임금이 학문을 연마하고, 신하들과 국정을 협의하던 일)을 주재하면서 부지런히 신하들의 의견을 묻고 경청

 

광화 – 임금의 뜻이 널리퍼지다

백성과 소통하며 백성을 위한 애민정치를 펼쳤던 세종.

역사상 최초로 17만명 대상 여론조사를 진행

그리고 임금의 뜻을 읽지 못하는 백성들, 자신의 뜻을 임금에게 전달하지 못하는 백성들을 위해 최고의 발명품인 훈민정음창제

 

경복궁이 주는 위압감을 이겨내고 최선의 정치를 펼친 한국사 최고의 성군 세종대왕.

백성은 나라의 근본이니, 근본이 튼튼해야만 나라가 평안하게 된다. – 세종실록 (1441년 12월 17일)

2017. 12 저작권자(c) 지식의 정석

군대 전투중대 기준 계급별 파워 TOP10

군대 전투중대 기준 계급별 파워 TOP10

 

10위. 일병

부대 내 건설과 작업, 생산 모든 일을 도맡아 하는 주 일꾼.

스타로 치자면 드론이라고 할 수 있다.

바로 위로는 상병과 병장들의 갈굼을 받으며

아래로는 이등별님들을 보살펴야 하는 군대 최하계층..

사실상 일개미.

 

9위. 이병

계급상 군대 모든 계급의 최하위.

군대를 잘 모르는 사람이 보면 가장 불쌍한 계급이지만.

실상은 뭔 뻘짓을 하더라도

일병이 탱커역할을 해준다.

때리고 갈궈봐야 효과도 없고, 득보다 실이 많은,

스타로 치면 라바 같은 존재.

무적의 방어력 덕에 이등별 이라고도 불린다.

마음의 편지라는 원기옥급 필살기를 가지고 있다.

 

8위. 상병

일개미들을 컨트롤 할 수 있기에 노역에서 한걸음 물러난다.

전투력이 뛰어난 상병의 경우 병들 사이의 실세로 군림할 수 있으나

부대사정에 따라 언제든 일병급 노예로 뒤바뀔 수 있다는 치명적 단점이 있다.

 

7위. 신임 하사, 신임 소위

계급은 다르지만 파워가 없다는 면에서 동일.

전쟁영화 같은거 보면 하사 소위매우 멋있게 나오지만

사실상 간부계층의 일개미라 할 수 있다.

밖에서 듣고 온건 많아 실무 배치 초반부터 부대 장악에 힘쓰지만

결국부대 내 병장들의 눈치를 보며 자신의 입지를 평가받는 수동적인 계급.

 

6위. 병장

병들 사이의 왕. 병들 사이의 절대권력.

이에 따라 국군 오대 장성이라는 우스갯소리도 있지만

결국은 먹으라 할때 먹고 자라할때 자야하는 피지배 계층.

언제나 자신들의 짬과 전투력을 과시하며 군림하지만

현실은 전역만 바라보는 해바라기에 불과.

 

5위. 중위

계급은 높지만 실질적 파워는 그리 높지 않다.

명목상 높은 계급을 뽐내보지만

현실은 적당한 중사 정도만 돼도 맞먹고

말년 병장들은 동네 형 취급을 한다.

스트레스가 많은 중대장들에겐 일상적으로 털리는 양민계층.

 

4위. 중사

실력에 따라 잘만 하면 에이스 대접을 받는 부대 내 실세.

나이와 짬이 적절히 혼합된, 그야말로 전투력의 최고봉으로서

병들에겐 그야말로 천적.

말년병장조차도 감히 개기지 못하는 존재이다.

중대원들에게 미치는 영향력이 상당하기에 중대장도 대놓고 건드리지 못한다.

거기에 족구 실력까지 겸비했다면 부대 내 무서울게 없는 에이스 계층.

 

3위. 중대장(대위)

말 그대로 중대의 대장이고

계급상의 파워는 물론 한 중대의 최고봉이지만.

장기복무가 될지 안될지에 대한 스트레스로

군생활 자체는 매우 고된 계층이다.

 

게다가 이제는 대대급의 압력과 명령을 받는 계층으로서,

권력 행사의 자유도가 높지 않다는 점에서 사실상 피지배계층.

 

2위. 행정보급관(상사)

중대의 투고.

그러나 군생활의 행복도는 대위와 넘사벽.

책상에 앉아 머리를 싸매고 진급걱정을 하는 대위와는 다르게

따사로운 햇볕을 받으며부대를 맘껏 누비는 태평한 계층이다.

중대장과는 다르게 자기 대로 권력 행사가 가능하며

약 20년의 짬밥과 요령으로 부대를 컨트롤하는,

사실상 자유민이라 할 수 있다.

 

지닌 바 전투력과 작업실력만으로도 부대원들의 순종을 이끌어내며

계급상 상관인 소위 중위 정도는 친척조카처럼 가볍게 다룬다.

 

1위. 말년 중위(말년 중사 포함)

ROTC, 즉 학군단출신의 장교는 중위로 전역하게 되는데.

이 말년 중위가 사회로 돌아가기 전의 자유도는 짬에 비해서 어마어마한 수준.

대놓고 집에 갈 사람 취급을 받으며 웬만한 사고가 아니면 터치가 없다.

대부분의 부대에는 상부에 보고하지 않고 묻어둔 비밀(구타,뺑끼,등등)이 존재하는데,

말년 중위는 온갖 내부사정을 안고있는 폭탄과 다름 없기 때문에

비밀이 많은 부대일수록 말년 중위의 자유도는 더욱 높아진다.

집에 갈 사람이라는 점에서 말년병장과 비슷하지만

어쨌든 간부들의 통제는 따라야 하는 말년 병장에 비해

넘사벽의 태업과 배째라를 구사할 수 있다.

만약 진급을 앞두고 꿀릴게 많은 중대장이라면,

말년중위가 복도에 똥을 싸도 함부로 할 수 없으며

행정관 정도만이 연장자로서 잔소리 정도를 할 수 있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