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반도 역사상 가장 부유했던 나라

한반도 역사상 가장 부유했던 국가는 어디일까?

당시의 모습을 복원한 사진들로 힌트를 대신한다.

바로 지금으로부터 1300년전인 신라.

복원도가 공개될 당신 사람들은 신라 경주의 사진을 보고 초가집이 왜 없냐는 등의 논란이 많았지만, 한반도 역사는 통일 신라때 가장 부유했다.

덧붙이자면 그 다음이 고려고 그 다음이 조선이었다.

통일신라의 부유함은 역사적으로도 증거가 많다.

『삼국사기(三國史記)』 중 헌강왕(憲康王, 재위 875~886) 대의 경주 모습을 묘사한 기록에는,

“도성 안에 기와집만 있고 초가집은 한 채도 없으며, 노래와 음악 소리가 길에 가득하여 밤낮으로 끊이지 않았다. 또 숯으로 밥을 짓고 땔나무를 쓰지 않았다.”

[헌강왕 6년(880)]

9월 9일에 왕이 좌우의 신라들과 함께 월상루(月上樓)에 올라가 사방을 둘러보았는데, 서울 백성의 집들이 서로 이어져 있고 노래와 음악 소리가 끊이지 않았다.

왕이 시중(侍中)민공(敏恭)을 돌아보고 말하기를,

“내가 듣건대 지금 민간에서는 기와로 덮고 짚으로 잇지 않으며, 숯으로 밥을 짓고 나무를 쓰지 않는다고 하니 사실인가?”라고 물었다.

민공이 “신(臣)도 역시 일찍이 그와 같이 들었습니다.”라고 대답하였다

통일 신라 시대 경주에 사는 왕족을 포함한 대귀족들은 매우 부유하고 사치스런 생활을 하였으며, 크고 화려한 집을 많이 지었던 것으로 보인다.

특히 화려했던 대저택 35채가 유명한데, 이 저택들을 ‘금을 입힌 집’ 내지는 ‘금이 들어가는 집’이라는 의미로 ‘금입택(金入宅)’이라 불렀다.

신라의 전성기에 서울에는 17만 8936호, 1360방, 55리, 35개의 금입택(金入宅)이 있었다.

남택(南宅)⋅북택(北宅)⋅우비소택(亏比所宅)⋅본피택(本披宅)⋅양택(梁宅)⋅지상택(池上宅)⋅재매정택(財買井宅)⋅북유택(北維宅)⋅남유택(南維宅)⋅대택(隊宅)⋅빈지택(賓支宅)⋅장사택(長沙宅)⋅상앵택(上櫻宅)⋅하앵택(下櫻宅)⋅수망택(水望宅)⋅천택(泉宅)⋅양상택(楊上宅)⋅한기택(漢岐宅⋅비혈택(鼻穴宅)⋅판적택(板積宅)⋅별교택(別敎宅)⋅아남택(衙南宅)⋅김양종택(金楊宗宅)⋅곡수택(曲水宅)⋅유야택(柳也宅)⋅사하택(寺下宅)⋅사량택(沙梁宅)⋅정상택(井上택(里南宅)⋅사내곡택(思內曲宅)⋅지택(池宅)⋅사상택(寺上宅)⋅임상택(林上宅)⋅교남택(橋南宅)⋅항질택(巷叱宅)⋅누상택(樓上宅)⋅이상택(里上宅)⋅명남택(椧南宅)⋅정하택(井下宅)

『삼국유사』권1, 「기이」2 진한

제49대 헌강대왕(憲康大王) 때에는 성 안에 초가집이 하나도 없었고 집의 처마가 서로 닿고 담장이 이어져 있었으며, 노래와 피리 소리가 길에 가득 차서 밤낮으로 끊이지 않았다.

신라는 조선과는 달리 약소국으로 시작해서 생존본능으로 외교력이 누구보다 뛰어났다.

적이지만 극단적대립과 전투는 피하는 모두와 친화정책을 펼쳐서 통일신라이후 태평성대를 누린다.

이성계처럼 조선 전체를 독재 사유화하려고 쇄국주의 농업의 중시하는것과는 달리 신라는 상공업에 굉장히 집착해서 당나라에 신라방이라는 최초의 코리안타운이 생기기도 했다.

이성계가 위화도에서 뒤통수를 쳐 나라 전체를 북한으로 만들어서 한반도 역사가 전부 가난했다고 착각하기 쉬우나 조선은 가난했을뿐만 아니라 전쟁에 엄청 시달렸다.

반면 통일 신라는 전쟁한번 없고 외교도 일본 중국과 사이좋게 지내면서 부를 축적했고 한반도 역사상 가장 부유했던 나라로 남게되었다.

선미가 11년만에 얘기하는 보내지 못한 마지막 문자 (동영상)

가수 선미가 아버지에 대한 아픈 기억을 고백했다.

지난 5일 OLIVE, tvN 토크몬에 출연한 선미는 연예계 데뷔 이후 처음으로 가슴 아픈 가정사를 전했다.

이날 방송에서 선미는 내가 연예인이 된 이유에 대해서 이야기를 시작했다.

그는 “초등학교 5학년 때 아버지와 남동생 둘이 살았고, 아버지는 편찮으셨다. 그런데 아버지가 병이 악화돼서 병원으로 옮겨졌다. 선생님들은 내가 선생님이 되길 바랐지만 그럴려면 적어도 10년 넘게 더 공부를 해야했고, 돈을 벌 수 없었다”며 “그래서 선택하게 된 게 가수”라고 말했다.

이어 선미는 “아버지가 저를 많이 예뻐하셔서 의지하시고 투정을 많이 부리셨다. 항상 답장을 해드렸는데, 연습생 생활만으로도 힘이 들었다. 어린 나이에 감당하기 버거웠다. 근데 어느날 문자가 왔다. 아빠 먼저 간다고 왔다. 난 또 아빠가 힘들어서 투정부리네 하고 문자에 답을 안했다. 근데 다음날 돌아가셨다”고 털어놨다.

아버지는 선미가 원더걸스로 데뷔하기 3개월 전 세상을 떠났다고.

선미는 “상 치르려고 내려간까 상주는 어린 동생들이 하고 있고, 아버지가 저한테 쓰신 편지가 있었다”며 “유서같은 게 있었는데 맨 마지막에 다음 생애도 내 딸로 태어나주렴”이라고 써 있었다”고 말했다.

이야기를 들은 이수근은 “아버지가 선미 씨가 너무 아빠 걱정할까봐 먼저 편안하게 쉬러 가신 게 아닐까 생각한다”고 말했고, 선미는 “그게 계속 마음에 남는다. 답장을 못했던 거. 전화를 안 받았던 거. 내 못 받은 게 아니고 안 받은 거”라고 전했다.

마지막으로 선미는 “이 이야기 하기가 어려웠던 게 지금은 동생이랑 엄마랑 아버지가 같이 살고 있어서 이제 지금의 우리 부모님들께 뭔가 좀 마음이 아프실 얘기가 아닌가 싶었다. 데뷔한 이후 이 이야기를 한 적이 없다”며 “이제는 정말 내 아버지고 어머니고 하니까 이걸 어떻게 말씀드려도 될 것 같아서”라고 덧붙였다.

선미의 슬픈 가정사를 접한 토크몬 MC들은 모두 눈물을 흘리며 가슴 아파했다.

안녕하시현 에디터 <제보 및 보도자료 editor@postshare.co.kr 저작권자(c) 포스트쉐어, 무단 전재-재배포 금지> 사진 = OLIVE, tvN 토크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