탈옥수 신창원을 당시 경찰들이 못잡았던 이유 (+신창원 근황)

신창원은 대한민국의 범,죄자로 1997년 탈,옥한 것으로 유명했으며 체포 당시 입었던 화려한 쫄티를 유행시킨 장본인이다.

그는 1994년 부산 교,도소로 이감되어 복역하던 중 1997년 1월 탈,옥을 저질렀다. 탈,옥하는 데에는 1시간 30여분 밖에 걸리지 않았다고 한다.

2년 6개월간 도피생활을 하다가 1999년 7월 16일 전라남도 순천시에서 가스 수리공이였던 신고자 김영근씨에 의해 붙잡혔다. 

그렇다면 그 당시 경찰들은 왜 2년 6개월동안이나 신창원을 검,거하지 못했을까?


부패한 사회일수록 악당이나 도,둑의 편이 되는 심리로 인해 그 당시에 신창원 팬클럽이 생길 정도로 인기가 많았다고 한다.

신창원은 3개월 전부터 치밀하게 탈,주 계획을 세웠다. 크기가 작은 창을 통과하기 위해 단식,절식을 통해 15~20kg 감량까지 했으며 저녁 음악방송 시간을 이용해 담벼락 공사현장에서 미리 구해둔 톱으로 쇠창살을 잘라냈다.

탈,주 후, 인근 농가에 침입해 옷과 자전거를 훔쳐 도주하였고 여성들을 통해 은신처를 제공 받기까지 했다.

탈,주 중에도 절,도와 강,도행위로 약 10억원을 훔쳤는데 돈,외모,잘 빠진 몸매까지 갖추게 된 신창원은 여자들에게 인기를 더 얻게 되었다.

심지어 일반 신혼부부처럼 대출금을 받아가며 신혼집을 장만하는 대범함까지.

그는 자신을 도와준 여성들에게 사랑한다는 믿음을 보여줬다고 한다.

신창원이 쓴 일기를 보면 여성들에 대해 진심어린 이야기를 적어놓은 게 있다는데

이 여자가 만약 나를 신고해서 내가 경찰에 잡혀가더라도 나는 후회가 없다라고 쓰여있었고 신창원이 검,거된 후 경찰은 도와준 여성이 자수하도록 권유했지만 그는 “그 여자는 잡히면 안됩니다”라며 자신을 숨겨준 여성을 위해 끝까지 말을 하지 않았다고 한다.

신창원은 경찰의 총에 맞아도 기어코 도망을 가고, 격투 중 부러진 뼈를 혼자 맞추기도 했다. 추격이 심할 땐 쥐를 잡아먹으면서 박스안에서 일주일 넘게 은신하기도 했다고 한다.

위장술도 뛰어나 담대하고 지능적인 범,죄자로 알려져있다.

대한민국의 형사 출신이자 범,죄 전문가, 지금은 제 20대 국회의원 표창원은 공교롭게 신창원과 어릴 적 자라온 환경이 비슷하지만, 아버지와 계모에게 학,대를 받던 신창원과는 달리 관심을 가져주는 사람이 있었기에 한 사람은 경찰이 되고, 다른 한 사람은 범,죄자가 되었다고 한다.


2018. 저작권자(c) 지식의 정석/사진 출처 = 나무위키, JTBC 크라임씬, MBN 아궁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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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시대, 최고 인기 많았다는 역대급 패스트푸드

조선시대 때, 배달음식이 있었다면 믿을 수 있나요?

당시 가장 큰 인기를 얻은 패스트푸드(?)가 있었다는 사실을 EBS1 역사채널e 에서 밝혀주었는데요.

과연 어떤 음식이었을까요····

1929년 12월, 인기 대중잡지에 신세대 신혼부부의 일상이 적혀있는데

Δ 청춘 부부가 만나 돈깨나 있을 적엔 양식집이나 드나들겠지만 어찌 돈이 무제한이겠습니까

Δ 돈은 없고 아침에 늦잠까지 자니 찬물에 손 넣기가 싫어 손쉽게 이것을 주문한답니다

Δ 공원 같은 데 놀러다니다 저녁 늦게 집에 들어가게 되니 밥 지어먹을 새가 없어 또 주문합니다

그들이 손쉽게 배달시켰던 음식은 경성 패스트푸드 설렁탕

정확한 기원을 알 수 없지만 일제강점기, 조선을 들썩이게 한 음식은 바로 설렁탕이었다고 합니다.

조선 총독부 주도로 시작된 식용 소고기 생산정책으로 인해 경성 내 정육점이 크게 늘었고 이에 따라 팔고 남은 소뼈와 부산물을 이용한 새로운 음식을 팔기 시작합니다.

맑고 투명한 국이 아닌 기름기 가득한 탁한 빛깔과 예로부터 늘 사용하던 간장 대신 소금으로 간을 하는 낯선 요리법의 설렁탕

한 그릇 13전으로 누구에게나 부담 없는 저렴한 가격과 별도의 조리시간 필요없이 솥에서 담아내면 되는 간편하고 빠른 한 끼 음식.

1924년 10월 2일 매일신보에서는 Δ 설렁탕은 실로 조선 음식계의 패왕 Δ 이라고 적혀있을 정도로 인기가 상당했습니다.

1930년대에 들어서면서 경성의 설렁탕집은 100여개를 넘어섰고 설렁탕의 주문이 많아지자 이를 배달해주는 사람들도 넘쳐났다고 전해집니다.

뿐만 아니라 조선 내의 일본인들까지 설렁탕을 즐기면서 조선의 최고 인기 음식으로 자리매김하게 됩니다.

패스트푸드, 배달음식이라 하면 햄버거나 피자라고 생각하는 현재의 우리와는 달리 조선시대 당시에는 설렁탕이 최고의 인기 패스트푸드였다고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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