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년이 되어 다시 한국을 찾은 6.25해외 참전용사들의 반응

노년이 되어 다시 한국을 찾은 6.25해외 참전용사들의 반응.

인천국제공항을 통해 노년의 남성들이 한국에 입국한다.

이분들은 6.25전쟁 영국 참전 용사 분들이다.

 

“임진강에 가는 거죠”라 묻는 한 참전 용사

 

한 용사는 임진강 근처 핀테일 브릿지(삼화교)가 있었건 곳에 가볼 수 있나 기대하고 있다.

 

그렇게 공항에서 버스를 타고 이동하는데

 

6.25전쟁으로 폐허가 됐었지만, 수십 년 만에 화려하게 발전한 서울.

발전된 서울의 모습을 보고 “놀라워요. 못 알아보겠어요. 완전 다른 나라예요”라고 놀라는 한 참전용사.

 

이곳이 서울이라는 말에.

 

“그 당시 서울은 평평했고 불타고 있었어요. 연기가 자욱했고요”라고 하시며 “불사조처럼 재생한 것 같다”고 말씀하심

 

“더 일찍 왔으면 좋겠다는 생각이 드냐”는 질문에 “시력이 좋았을 때 달아왔다면 정말 좋았겠다”는 참전용사

 

토머스 클로프님은 19살의 어린나이에 6.25전쟁에 참전했음

 

아버지가 군대에서 빼줄 수 있다고 말했으나 “괜찮아요. 전 가고 싶어요”라고 말하며 참전한 토머스 클로프님

 

이분께서는 당시 박격포 공격을 받아 몸에 폭탄 파편들이 박혔고..

 

왼쪽 눈에 박힌 파편으로 실명, 그리고 중공군이 쏜 총에 맞아 다리가 관통되기도 하심..

 

그리고 “막 걸음마를 시작하는 민주주의 국가를 위해 싸우러 간 것은 가치 있는 일이었다”고 말씀하시는 참전용사님

 

한편 6.25전쟁 전투 중에 영국군 29여단 얼스터 대대 장병들이 중공군의 공세를 저지하여 1.4후퇴를 가능하게 한 해피 밸리 전투가 잘 알려져있다.

1.4후퇴 당시 100만으로 추정되는 서울의 시민 절반가량이 서울을 빠져 피난을 가고 있었을 때, 29영연반 여단의 1대대, 그리고 영국의 얼스터 대대는 50만 가량의 서울 시민을 엄호 하기 위해 지금의 서울 은평구와 고양시 초입에 이르는 구간을 지키고 있었다.

 

만약 이곳이 뚫린다면 피난 중인 서울 시민들이 엄청난 피해를 입게 되는 상황이었으나, 밀려오는 중공군에 맞서 피난 중인 서울 시민들을 호위한 이들 덕분에 1.4후퇴가 가능했다.

하지만 작전 이후 철수 명령 등이 다른 부대보다 늦게 전달되면서, 뒤늦게 철수하던 영국군 29여단 얼스터 대대는 중공군에게 포위됐고, 대대장 이하 157명이 목숨을 잃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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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중에서 엔진이 멈췄는데 전원생존할 수 있었던 이유(ft.전설의 기장)

1983년 7월 23일. 에어 캐나다 143편 보잉 767-233이 캐나다 몬트리올을 출발해 오타와를 거쳐 에드먼턴으로 향하기 위해 급유를 받고 있었다.

출시된 지 얼마 안 된 신종 기체였던 보잉 767기는 연료탑재정보시스템을 통해 급유를 하는데, 당시 해당 시스템이 제대로 작동하지 않았다.

시스템이 제대로 작동되지 않자 급유 담당 직원은 연료계측봉을 이용해 직접 측정하여 급유를 하려 한다.

그런데 여기서 문제가 발생한다. 당시 캐나다는 파운드법에서 SI 단위로 표준단위를 전환하는 중이었는데, 급유 담당 직원이 습관적으로 SI 단위가 아닌 파운드 기준으로 계산을 해버린 것이다.

SI단위로 연료가 20,088리터가 필요했지만, 직원은 파운드 기준으로 계산을 해버려 4,916리터만 급유했다.

그렇게 이륙한 에어 캐나다 143편은 온타리오주 레드레이크를 지나며 41,000피트를 상공 비행하던 중.. 당연히 연료부족으로 경고음이 마구 울리더니 상공에서 엔진이 멈춰버린다.

이때 기장은 취미였던 글라이더 비행의 포워드 슬립이라는 기술을 이용해 기체의 고도를 낮추는 기질을 발휘했고, 무사히 착륙하여 승객 61명 모두 전원 생존한다.

나중에 승객들의 인터뷰에 따르면 기장이 포워드 슬립이라는 기술로 고도를 낮추고 있을 때, 주변 골프 코스에서 골퍼가 몇 번 클럽을 쓰고 있는지 알 수 있을 정도로 고도가 낮았다고 한다.

마지막으로 해당 기체는 결함이 아닌 연료부족이 원인이었고, 착륙할 때 기체에 가해진 충격도 크지 않아 날아간 랜딩기어 등등만 정비받고 2일 만에 다시 하늘을 날 수 있었다고.